문수동자탑

문수 도량인 칠불사에는 문수동자탑이 있다. 동자탑 유래는 다음과 같다. 조선조 중엽에 하동부사가 새로 부임하여 초도 순시 차 쌍계사를 경유하여 칠불암을 방문하였는데, 온 절이 조용하고 맞이하는 사람이 없었다. 다만 아자방 앞에 신발이 많이 놓여 있는 것을 보고 문을 열려고 하는데 별안간 동자승이 나타나 문을 못열게 하면서 “스님들이 참선 공부하는 곳이니 조용히 하십시오”라고 했다.

부사는 마음이 숙연해져서 공부하는 모습을 좀 보여 줄 수 없느냐고 하니, 손가락을 입에 대고 말을 하지 못하게 하면서 동자승이 문을 살짝 열었다. 안을 들여다 보니, 늦은 봄이기 때문인지 점심 공양을 금방 마친 스님들은 졸음에 취하여 고개를 젖히고 천장을 쳐다보거나, 고개를 떨구고 있거나, 혹은 좌우로 흔들며 졸고 있었다. 그러자 부사가 저것이 다 무슨 공부냐고 동자승에게 물었다. 동자승이 대답하기를 “고개를 젖히고 하늘을 쳐다보는 것은 앙천성수관(仰天星宿觀)으로서, 저 하늘의 별처럼 많은 천상 세계를 관찰하는 것이니, 복락에 빠져있는 중생들을 제도하기 위한 공부입니다. 고개를 떨어뜨려 땅을 보고 있는 것은 지하유명관(地下幽冥觀)으로서, 사람이 나쁜 행위를 하면 사후에 깜깜한 지옥에 떨어지는데, 그 고통받는 중생들을 구제하는 공부입니다. 몸을 좌우로 흔드는 것은 춘풍양류관(春風楊柳觀)으로서, 봄바람에 흔들리는 버드나무가 이쪽에도 닿지 않고 저쪽에도 닿지 않는 것처럼 양변에 치우치지 않는 중도 실상을 관하는 공부입니다.”라고 했다.그 때 마침 방귀를 뿡 뀌는 소리가 들렸다. 부사가 저 방귀뀌는 스님은 무슨 공부를 하는 것이냐고 묻자, 동자승은 “저것은 타파칠통관(打破漆桶觀)으로서, 칠통같은 무명업식이 깨어지는 소리입니다.”라고 하니 부사는 마음에 뭔가 석연치 않으나 따로 할 말도 없어서 그냥 돌아가고 말았다.

동헌으로 돌아간 부사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스님들이 조는 것 같은데 그 동자승은 그것이 모두 다 공부라 하니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참인지 거짓인지를 가리기 위하여 문제를 제시했다. 즉 칠불암 스님들에게 아무 날 아무 시까지 목마를 만들어 가지고 와서 동헌 앞마당에서 목마를 타고 달려보라는 것이었다. 부사로부터 이 명령을 받은 칠불암 스님들은 매일 아침 공양 후 대중 공사를 부쳐 누가 목마를 타고 동헌 마당을 돌 것인지를 상의하였으나, 묘안이 있을 리가 없었다. 시일이 다 되어가는 어느 날 이삼일 전에 방부를 들인 사미승이 대중 앞에 나와 “대중 스님들은 걱정하지 마시고 싸리나무로 엮어서 목마를 하나 만들어 동헌 마당에 갖다 놓으시면 타고 달리는 것은 제가 하겠습니다.”라고 했다.

스님들이 목마를 만들어 동헌 마당에 가져다 놓으니, 어린 동자승이 목마를 타고 고사리 같은 손으로 목마의 엉덩이를 철썩 치면서 “이랴! 이 망아지야 달려라” 하니 목마가 먼지를 일으키면서 동헌 마당을 빙빙 돌았다. 그러자 부사는 마음속으로 겁이 덜컥 났다. “저 어린 동자승도 신통이 저렇게 자재한데, 저 큰스님네들은 신통이 오죽하겠는가”라고 생각을 하고 그만 두라고 하고, 스님들에게 공경심을 내었다. 스님들이 칠불암으로 돌아오는데 목마를 탔던 동자승이 대중스님들을 향해서 “스님들 정진 잘 하셔야 합니다.”하고 별안간 사라져 버렸다. 대중 스님들은 그제사 그 사미승이 문수보살의 화현임을 깨닫고 크게 발심하여 더욱 용맹정진 하였다고 한다. 동자가 사라진 자리에 현재의 문수동자탑을 세웠다. 그리고 하동부사는 칠불암의 생불스님들에게 어떻게 하면 좋은 인연을 맺을까 하고 생각한 끝에 지난 번 칠불암을 방문했을 때 장판이 닳아 다 떨어진 것을 보았으므로, 창호지를 여러 겹 겹쳐 만든 각장판을 깔아 드리고, 아자방 좌선처의 모서리 장석을 백동으로 만들어 시주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