七佛寺 이야기

야생 녹차 시배지 사람들

야생 녹차 시배지 사람들

 

 

화개는 지리산 줄기에 자리한 마을로

아름다운 산수와 더불어 야생녹차나무의 시배지로 유명하다. 화개 야생녹차나무의 역사를 거슬려 올라가보면 통일신라시대 때 당나라의 사신으로 갔던 김대렴이 차나무의 종자를 가져와 왕의 명으로 쌍계사 주변에 심었고 그 후 쌍계사를 창건한 진감선사가 차나무를 번식시켰다고 전한다. 그 후, 천년 세월이 흐르는 동안 야생녹차나무는 쌍계사 주변의 산기슭을 타고 마을 곳곳으로 번져나가 지금은 하동군 어디를 가도 야생녹차나무를 쉽게 볼 수 있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는 야생녹차나무 잎을 따다가 만든 차를 작설차(雀舌茶) 또는 죽로차(竹露茶)라고 했다. 작설차는 차 잎이 참새 혓바닥만 하다고해서 붙여진 이름이며 죽로차는 대나무 숲에서 이슬을 먹고 자란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녹차가 작설차로 통칭되던 그 시절만 해도 삼시세끼 끼니를 걱정해야 했던 때로 야생녹차나무는 땔감나무보다도 더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고 문명이 발전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삶의 질을 추구하게 되고 그 기류에 편승하여 야생녹차에 대한 관심도도 높아졌다. 그 여파로 녹차는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여러 가지 상품으로 다양하게 개발되었고 지금도 개발이 계속되고 있다.

 

격세지감을 느끼는 이야기지만

차시배지 화개 사람들은 봄이면 녹차 잎을 따다가 손으로 대충 비벼서 그늘에 시나브로 말려 오래오래 끊여서 마셨는데 색깔은 결명자를 끊인 물처럼 붉었고 맛은 쌉싸래했다. 우리 집은 항상 노란양은 주전자에 녹차를 끊여 놓고 마셨는데 여름이면 차갑게 해서 밥을 말아먹었고 겨울이면 따뜻하게 해서 물처럼 마셨다. 귀한 손님이 오실 때는 특별히 녹차에 설탕을 타서 대접했다. 녹차는 약 대용이 되기도 하였는데, 특히 감기에 효력이 있었다. 녹차나무 잎을 따다가 푹 달여 설탕을 듬뿍 타서 한 사발 마시고 뜨끈뜨끈한 온돌방에 한숨자고 나면 감기가 씻은 듯 나았다. 차시배지 화개 사람들은 녹차마시는 일이 다반사(茶飯事)지만 다도 같은 격식이 있는지조차 모른 채 필요에 따라 여러 용도로 소박하게 사용했다. 그러나 녹차를 제대로 만들 줄 알고 다도가 무엇인지 아는 일부 계층의 사람들도 있었으니 그런 부류의 사람들은 다름 아닌 몇 안 되는 식자층과 쌍계사 스님들이었다. 스님들은 쌍계사 주변에 지천으로 널려 있는 차 잎을 따다가 녹차를 정성껏 만들어 다도를 행하며 마셨다.

 

오랫동안 녹차를 만들어 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녹차나무가 어디에서 자랐느냐에 따라서 차 맛이 천양지차라는 것이다. 사람마다 의견이 분분하지만 화개에서는 쌍계사 주변에서 자라는 녹차나무의 차 맛을 으뜸으로 친다. 그 이유는 지리산의 울창한 숲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아침이면 계곡에서 피어오르는 물안개, 그리고 밤낮의 큰 일교차 때문이다. 녹차는 기후조건에 따라 차 잎 맛이 좌우되기도 하지만 차 잎을 따는 시기도 중요하다. 녹차는 채다 시기(잎의 채취 시기)에 따라 세작(곡우에서 입하 사이 채취), 중작( 입하 이후), 대작(한여름)등으로 나뉘는데 아주 이른 시기에 채다를 해서 만득 녹차를 우전이라고 한다. 채다 시기도 중요하지만 채다 시간도 간과 할 수 없다. 제일 좋은 채다 시간은 동트기 전 차 잎이 아침이슬을 흠뻑 머금고 있을 때이고, 제일 안 좋은 시간은 한 낯의 땡볕이 내리 찔 때다. 아침이슬을 머금은 차 잎을 채다해서 만든 녹차는 맛이 순하고 차향이 향기로운 반면 한낮의 뜨거운 태양아래서 채다해서 만든 녹차는 쓴 맛이 강하다. 또한 비가 온 뒷날 채다를 해서 만든 녹차는 향도 좋지 않고 맛도 싱거우므로 비온 뒤 2~3일 지나서 채다를 하는 것이 좋다.

 

 

녹차를 만들 때

구증구포(아홉 번 덖고 아홉 번 비벼주는 것)를 최고로 치지만 일반인들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몇 번 비비고 몇 번 덖음하느냐도 중요하지만 그것 보다 녹차의 맛은 첫 덖음과 마지막 맛내기에서 결정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러 설이 있기는 하지만 어떻게 만드느냐 보다는 결국은 차를 우려냈을 때 그 맛이 승패를 좌우한다. 차 맛은 물, 온도, 우려내는 시간이 중요하다. 이 세 가지 조건에서 하나만 맞지 않아도 녹차의 향과 맛과 색깔을 제대로 살릴 수 없다. 그 중에서도 차의 맛을 이루는 가장 근본은 물이다. 녹차의 99%가 물이므로 차의 품질도 좋아야 하지만 그만큼 물이 좋아야 한다는 것이다. 세작은 물의 온도를 50~60쯤으로 하고 중작은 60~70사이에 맞추면 된다. 어린잎이나 좋은 차일수록 물의 온도를 낮추는 것이 이상적이다. 초 세작이면 50도 세작은 55, 중작은 60, 대작은 70도로 찻잎의 크기가 크면 클수록 물의 적정 온도가 높아진다.

 

명인의 솜씨로 만들고

우려낸 녹차라도 진정으로 녹차 맛을 아는 사람을 만나야 그 맛을 인정받을 수가 있다. 그것은 개인에 따라 고소한 차를 좋아하는 사람, 약간 풀 향기가 나는 차를 좋아하는 사람, 사람마다 선호하는 차 맛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런 개인적인 차 맛의 취향을 넘어선 차 맛의 달인을 만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명차는 명인을 만났을 때 그 품격을 인정받고, 맛의 달인을 만났을 때 비로소 선의 경지에 오른 녹차의 맛을 인정받을 수 있다. 좋은 차를 만들기 위해서는 채다 시기부터 만드는 전 과정이 끝날 때가지 한결같은 정성이어야 한다. 좋은 차라고 무조건 좋은 맛을 내는 것은 아니다. 녹차를 우려내는 사람의 마음속에 잡념이 있으면 차 맛을 살리기가 어렵다. 그래서 녹차를 마시면서 다도 운운하는지는 모른다. 다도란 티끌만한 잡념도 없는 깨끗한 마음, 그것은 곧 정성이 아닐까 생각한다. 굳이 다도를 지켜서 마시지 않더라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마시면 향기로운 차향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행동으로 말을 증명하고 어리석은 사람은 말로 행위를 변명한다. -유태경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