七佛寺 이야기

지리산과 사람들

지리산과 사람들

 

 

 

 

국립공원 1호인

지리산은 높이 1915m로 전라북도, 전라남도, 경상남도 세 개의 도와 남원시, 구례군, 산청군, 하동군, 함양군의 다섯 개의 행정구역을 가지며, 천왕봉을 최고봉으로 서쪽 끝의 노고단, 서쪽 중앙의 반야봉 등 3봉을 중심으로 하여 동서로 100여 리의 둘레를 형성한다. 섬진강과 남강이라는 두 개의 큰 강줄기와 더불어 눈이 시리게 푸르고 맑은 강물은 신록의 경치와 조화를 이루며 지리산 12동천으로 그 자태를 빛내고, 화엄사, 천은사, 연곡사, 쌍계사 등 유서 깊고 고졸한 사찰들을 안온하게 품고 있다. 세인들의 입에 회자되는 지리산 10대 비경으로는 천왕봉 일출, 연하 선경, 칠선계곡, 벽소명월, 피아골 단풍, 반야봉 낙조, 노고단 운해, 세석철쭉, 불일폭포가 있다. 그러나 지리산은 이런 비경에도 불구하고 혈육이 서로의 가슴에 총부리를 겨누고 피아골의 단풍보다도 더 붉은 피를 토하며 죽어간 슬픈 역사를 간직한 산이다.

 

내가 태어난 범왕은

지리산 등산로가 시작되는 화개 고을 끝 동네로서 전쟁이 끝난 후에도 전쟁터와 진배없었다. 194810월부터 지리산으로 숨어든 빨치산세력들은 19536.25전쟁이 휴전으로 끝난 후에도 그들의 저항활동은 19555월까지 계속되었다. 그 기간 동안 벌인 군경토벌대와 좌익 빨치산들의 치열한 싸움은 지리산 일대 수많은 양민들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슬픔과 고통을 안겨 주었다.

 

빨치산은

지세가 험준하고 숲이 울창한 지리산에 은신하면서 지휘본부를 두고 군경과 맞섰다. 군경 토벌대는 빨치산을 찾아내기 위해 군용견과 수색대를 동원해 산을 이 잡듯 뒤졌고 빨치산은 수색대를 피해 더 깊고 깊은 계곡으로 숨어들었다. 토벌대와 빨치산이 쫓고 쫓기면서 쏘아대는 총성과 개 짖는 소리는 마른하늘에 뇌성벽력처럼 온 산천을 울렸고 마을 사람들은 불안에 떨어야 했다. 한바탕 격전이 벌어지고 난 계곡 골짜기마다에는 아군과 적군의 시신이 너부러져있었다. 이런 와중에 지리산 아래 양민들의 삶은 말이 아니었고, 우리 할아버지, 아버지도 내일을 기약 할 수 없는 나날을 보냈다. 빨치산은 대낮에도 군경이 없는 틈을 타 마을을 약탈했고, 약탈한 물건을 마을 장정들에게 지여 지리산으로 끌고 갔다. 구사일생으로 도망 온 사람도 있지만 발각되어 총살당한 사람도 있다. 가족의 애타는 기다림에도 불구하고 행방불명되어 연락이 두절된 사람들도 부지기수다.

 

동네 사람들은 밤이면 빨치산을 피해 십 리가 넘는 산길을 걸어 아랫마을로 피난을 갔다. 나의 어머니는 눈먼 할머니를 등에 업고, 어린 자식들을 앞세워 그 험한 산길을 짚신 발로 타박타박 걸어 피난을 갔다. 날이 밝아 동네로 돌아와 보면 빨치산들은 곡식 한 톨 남겨 놓지 않고, 이불이며 옷가지까지 몽땅 털어가고 집은 난장판이 되어있다. 가축은 허기진 배를 채우느라 잡아먹었는지 그 흔적이 섬뜩하리만치 온 집안에 널려 있다. 어느 나라 폭군의 가렴주구가 이보다 더 가혹하겠는가. 그렇게 7년여 동안 지리산은 실로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아우성과 절규의 세계로 일변하였고, 전쟁의 포화로 인해 처참한 모습으로 그슬려져야만 했다. 그뿐 아니라 전쟁을 치른 당사자들이었던 군경과 빨치산 2만 여명의 고귀한 생명들이 지리산의 이름 모를 능선과 계곡에서 처참하게 죽음을 맞이해야 했으며, 또 그 틈바구니 속에서는 수를 헤아리기 힘든 무고한 양민들이 불합리한 전쟁의 와중 속으로 편입될 것을 강요당하며 엄청난 고통과 희생을 치렀다.

 

빨치산 토벌이 완전히 끝난 후에도

지리산 일대 사람들의 삶은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처참했다. 가족을 잃은 사람, 이웃을 잃은 사람들이 그 충격에서 벗어나기도 전에 찢어지게 가난한 현실과 맞서서 싸워야 했다. 그들은 살기 위해 죽은 사람을 가슴에 묻고, 살기 위해 땅을 일구고 눈물에 젖은 씨앗을 뿌렸다. 춥고 배고픔 사람들은 추수를 기다리며 지리산을 찾았고 지리산은 어머니처럼 그들을 보듬어 안고 달래주었다. 피울음의 세월은 가고, 빨치산과 군경이 숨 가쁘게 쫓고 쫓기던 지리산의 아름다운 남부능선과 계곡에는 칼날같이 서슬이 시퍼런 물이 흐르고, 이데올로기에 노예가 되어 목숨을 초개같이 버린 빨치산의 광기어린 아우성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지금은 물소리, 바람소리, 산새들의 지저귀는 소리가 평화롭다. 이렇듯 지리산이 걸어온 길은 곧 우리 민족의 산 역사이며 우리네 삶이다.

 

 

 

우리는 모든 사람을 죽인다. 몇 사람은 총알로, 몇 사람은 말로. 모든 사람은 그들의 행위로 사람들을 무덤으로 몰아넣고도 그것을 보지도 않고 느끼지도 않는다. - M.고리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