七佛寺 이야기

아름다운 십 리 벚꽃 길

아름다운 십 리 벚꽃 길

 

 

 

화개하면

화개장터 다음으로 유명한 십 리 벚꽃 길이 있다. 십 리 벚꽃 길은 화개장터에서 쌍계사에 이르는 길을 말하며 사랑하는 청춘남녀가 두 손을 꼭 잡고 걸으면 백년해로를 한다고 하여 일명 혼례길이라고도 한다. 이 길은 한국도로공사에서 선정한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부분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십리벚꽃 길은,

백년을 넘는 긴 세월동안 서로 마주보고 살아온 벚꽃 나무가 고목이 되어 한데 어우러져 하늘을 가리고 있다. 삼월이 되면 잎 하나 없는 고목나무에서 소녀의 젖꼭지만한 꽃 봉우리가 알알이 열리고, 그 푸르스름한 꽃 봉우리가 춘풍에 하늘거리며 분홍색 꽃 봉우리로 부풀어 올라 일제히 꽃망울을 터트릴 때면 눈꽃 같은 하얀 벚꽃은 화개 고을을 순식간에 낭만과 사랑이 넘치는 곳으로 만들어 버린다.

 

해마다

수많은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아 다시 찾아오게 만드는 벚꽃의 매력은 아름다움이 절정에 이르는 순간 낙화하기 때문이 아닐까. 꽃잎이 바람에 눈보라 치듯 공중을 휘돌아 떨어져 내리고, 땅위를 맴돌던 꽃잎이 바람에 날아오르면 사람들은 향기로운 꽃바람에 마음을 빼앗겨 버린다. 멀리 화개동천으로 날아 간 꽃잎은 동동 떠내려가다가 둥글고 작은 바위에 하나 둘 걸려 마치 실에 꿰다만 진주목걸이 같다.

 

벚꽃의 어여쁜 자태가 어디 낙화 때문이겠는가.

벚꽃위에 달빛이 쏟아져 내리는 밤이면 모든 번뇌를 잊게 할 정도로 그 아름다움은 극치에 달하고 보는 이의 영혼마저도 꽃이 되게 한다. 만약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을 고백하지 못해 애태우고 있다면 달빛이 부서져 내리는 화개 십리벚꽃 길에서 고백하라. 그러면 반드시 이루어 질 것이다. 인위적으로 만들어 낸 화려한 이벤트보다 더 진실하게 마음을 전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화개 사람들은

달 밝은 밤이면 막걸리를 받아 들고 안주거리를 장만해 벚꽃 길을 찾는다. 벚꽃 길을 걷다가 제일 아름다운 벚꽃나무에 다다르면 자리를 잡고 빙 둘러 앉아 술판을 벌인다. 꽃바람이 불면 머리위에도, 어깨위에도, 막걸리 잔에도 꽃잎이 하늘하늘 떨어져 내린다. 그 황홀함에 취해 권주가를 부르고, 돌고 도는 막걸리 잔에 밤은 깊어간다. 꽃향기 그윽한 꽃길에서 유리알 같은 화개동천의 맑은 물소리 들어가며 마시는 술에 취기가 오르면, 저마다 가슴에 꼭꼭 묻어두었던 옛 이야기를 하나 둘 풀어 놓는다. 낭만적이고 환상적인 술자리에 무슨 말인들 못할까.

 

화개사람들은 우스갯소리로

과부가 벚꽃놀이를 가면 수절하기 어렵고, 홀아비가 달밤에 벚꽃나무 밑에 가면 논마지기가 달아난다고 하였다. 그 말은 옛날에 화개 골에 미색이 출중한 과부가 살았는데, 그 과부가 달이 휘영청 밝은 어느 날 밤에 하얀 소복을 입고 벚꽃 나무에 기대어 서서 달을 바라보고 있는데, 그 앞을 지나가던 한동네 홀아비가 그만 연모의 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일을 저지르고 논 세마지기를 주고 해결했다 해서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 같은 이야기다. 진실인지 거짓인지는 아무도 모르고 오직 벚꽃만이 알고 있으리라.

 

나는 아름다운 벚꽃 길을 걸어서 화개중학교를 다녔고

청소년기를 보냈다. 꽃바람이 불고 꽃향기를 실은 바람이 불어 올 때면 고전 속에 나오는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를 떠올리며 나에게도 그런 사랑이 찾아오기를 꿈꾸었다. 그런데 벚꽃이 눈처럼 휘날리던 어느 날, 책상위에 예쁘게 접은 쪽지하나를 발견했다. 그 쪽지에는 '오늘 저녁에 화개장터에서 시작되는 11번째 벚꽃나무 밑에서 8시에 만나자.'고 적혀있었다. 그러나 자신이 누군지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

 

나는 수업을 마치고

교실을 빠져나가는 여학생들을 보면서 분명 저 아이들 중에 한 명일 텐데 누굴까? 궁금한 걸로 치자면 일일이 붙들고 물어 보고픈 심정이었다. 나는 가볼까, 말까 망설이다가 누군지도 모르고 나갔다가 마음에도 없는 아이가 그 곳에서 기다린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가지 않았다. 그때 일은 벚꽃이 필 때쯤이면 생각나는 아름다운 추억이 되었다. 언젠가 중학교 동창회에 참석하는 날이 오면 쉰을 넘은 여학생들에게 스스럼없이 물어봐도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십리벚꽃 길을 걸으며 생각한다.

이 아름다운 길을 왜 걷지 않고 차를 타고 씽씽 지나가는 것일까. 나는 사람들에게 타고 온 차를 화개장터 주차장에 세워 두고 십 리 벚꽃 길을 걸어서가라고 권하고 싶다. 벚꽃 길을 시나브로 걸어서 가면 벚꽃이 품어내는 꽃향기를 그대로 느낄 수 있고, 꽃 속을 드나들며 중신아비 노릇하느라 바쁜 벌, 나비들의 왕왕거리는 날개 짓 소리 등을 다 들을 수 있다. 길옆에 있는 녹차 밭이며 길 아래 흐르는 화개동천의 아름다움도 더불어 볼 수도 있다. 아무도 없는 새벽이 벚꽃을 감상하기에 좋은 시간이다. 다른 꽃은 필 때가 아름답지만 벚꽃은 유일하게 질 때가 아름다운 꽃이다. 우리네 인생도 아름다움의 절정에 이르러 낙화하는 벚꽃처럼 돌아서는 뒷모습이 아름다운 사람이 되었으면 좋으련만.

 

 

아름다움이란 자연이 여자에게 주는 최초의 선물이며, 자연이 여자에게서 빼앗는 최초의 선물이다. -나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