七佛寺 이야기

꽃길 따라 흐르는 마지막 청류 섬진강

꽃길 따라 흐르는 마지막 청류 섬진강

 

 

 

내 고향은,

하동읍에서 19번 국도를 따라 하늘빛처럼 맑은 섬진강을 가슴으로 안고 물길을 거슬러 꽃길을 따라 올라간다. 옛날 이 꽃길이 신작로라 불릴 때는 영남호남 지역의 도보상과 장돌뱅이들이 등짐을 지고 조랑말에 짐을 가득 싣고 터덜터덜 걸어서 화개 장을 갔던 길이다. 멀리 타 지역에서 오는 장꾼들은 행여나 화개 장날을 놓칠세라 밤을 낮으로 삼고 달빛을 등불삼아 수십 리 길을 재촉하며 달려왔다. 그런 그들도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이 섬진강변에 당도하면 차마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잠시 등짐을 벗어놓고 달빛이 쏟아지는 강물을 바라보며 고향에 두고 온 처자식에 생각에 담배연기에 긴 한숨을 토해낸다.

 

내 나이 열네 살이 되던 해,

나는 배움의 길을 찾아 옛 사람들의 한 많은 삶을 이어주던 길을 따라 도시로 떠났다. 나를 싣고 신작로를 달리는 버스는 마치 체에 콩을 까불 듯 사람들을 의자에서 튀어 오르게 하고 다시 의자에 내리꽂아 박아 좌우로 흔들어댔다. 나는 차멀미에 괴로워서 울었고, 간신히 차비를 마련해 주며 동구 밖에서 야윈 손을 흔들며 배웅하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슬퍼서 울었다. 사람들의 한 많은 과거사가 서려있는 울퉁불퉁한 신작로는 오늘날 시멘트로 포장이 되고, 벚꽃이 만개하는 봄이면 전국각지에서 몰려드는 상춘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세월 따라 잊혀져가던 옛 사람들의 애잔하고 고달픈 삶의 발자취는 화개장터를 사랑하는 사람들에 의해 문학과 예술로 거듭나고 있다.

지금도 하동포구 팔 십리 섬진강변에는

세월이 바람처럼 달리고 언덕배기에는 야생화가 곱게 피어 하늘거린다. 산마루 마다 자리하고 있는 촌가에는 햇살과 바람과 구름이 주인인양 한가롭게 노닐고, 새들은 초가지붕 위에서 하릴없이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산은 섬진강에 발을 담그고 사시사철 꽃이 피기도 하고, 지기도 하면서 단풍이 들고 떨어져 눈 내리는 겨울을 맞는다. 섬진강은 산이 있기에 아름다고 산은 섬진강이 있기에 더욱 푸르게 빛난다. 선남선녀 같은 산과 강이 어우러져 벚꽃 길 또한 전국 어느 지역보다 아름답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봄이면 촌가 앞 들판에 돋아 오르는 파란 새싹도 마치 벚꽃을 받쳐주는 거대한 꽃받침 같아 꽃도 새싹도 모두 꽃이 되는 시절이다.

 

벚꽃 길 따라 흐르는 섬진강은

수많은 여울목과 용소를 만들어 내며 산 굽이굽이를 돌아 흐른다. 섬진강이 화개천과 가까워지면 지리산과 백운산은 맞절을 하는 듯 협곡을 이루고 강물은 더 맑고 푸르다. 강 언저리에 끝없이 펼쳐진 명주 같은 하얀 모래는 푸른 물결과 어우러져 흡사 비취빛 가을하늘과 하얀 구름이 강물과 모래가 된 듯하다. 그 뿐인가. 섬진강에 새벽이 오면 천지간을 뒤덮는 물안개가 피어오르고 아침 햇살에 얼음같이 투명한 파란 알몸을 드러내는 강은 온통 보석을 뿌려 놓은 듯하다. 마치 다이아몬드 같아 손으로 한 움큼 쥐면 잡힐 것만 같다. 섬진강은 그 이름의 유래도 강만큼 아름답다. 1385년 고려 우왕 11년에 왜구가 섬진강 하구에 침입하였을 때 수십만 마리의 두꺼비가 울부짖어 왜구가 광양 쪽으로 피해 갔다는 전설이 있어 이때부터 두꺼비 자를 붙여 섬진강이라 하였다고 전한다.

 

어느 풍류객이 섬진강을 봄 강이라고 하였듯이

봄에 보는 섬진강은 참으로 아름답다. 봄이 오면 재첩 잡는 아낙네들과 재첩을 실은 조각배가 강을 가득 메우고, 하루 내 부초처럼 물결에 출렁거리며 재첩을 잡는 아낙들의 머리위로 노을이 붉게 물들어 갈 때면 조각배도 아낙들도 강물위에 그려진 한 폭의 그림이 된다. 그들의 고달픈 삶은 화가의 영혼을 담아 그려낸 명화처럼 보는 이들에게 아름다운 감동을 준다. 섬진강은 재첩뿐만 아니라 은어로도 유명하다. 강태공들은 봄부터 여름까지 섬진강을 거슬러 올라오는 은빛 은어를 낚아채려 강물에 하반신을 담군 채 장승처럼 버티고 서 있다. 여름에 살아남은 은어는 가을이면 산란을 마치고 강기슭으로 밀려나와 죽는다. 강변 사람들은 죽어가는 은어를 맨손으로 쉽게 잡는다. 그리하여 가을이면 온 동네가 은어 굽는 냄새로 진동을 한다.

 

섬진강에 여름이 오면

한낮의 태양은 백사장을 은빛으로 빛나게 하고, 고기도 잠든 깊은 밤이면 달빛어린 강물은 조용조용 외롭게 흘러간다. 반딧불이 강 가장자리에서 뱅글뱅글 돌면 개구리도 울고 두꺼비도 울어댄다. 선비의 심성을 가진 섬진강은 더위를 피해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면 그 넉넉한 품을 말없이 내어 준다. 피서객들은 강변을 따라 형형색색의 텐트를 치고 낮에는 모래찜질과 물놀이를 하고, 밤이면 랜턴을 들고 강기슭을 따라 고동도 잡고 서투른 솜씨로 낚시도 하며 더위를 식힌다. 피서객이 돌아가고 나면 섬진강 곳곳에는 사람의 흔적이 역력하다. 하지만 섬진강은 멈추지 않고 흐르고 흘러 오늘도 마지막 청류의 맑음을 잃지 않고 있다.

 

아름다운 섬진강은

외지사람들에게는 좋은 휴양지이고 손바닥만 땅덩어리 하나 없이 빈곤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논이요, 밭이다. 강에서 잡은 물고기로 쌀도 팔아먹고 고기도 사먹고 자식 공부도 시킨다. 지금도 차도를 따라 즐비하게 늘어선 식당가를 둘러보면 섬진강에서 잡은 고기와 참깨가 수족관에 그득하다. 타지에서 온 관광객들은 처음 보는 어종들을 신기한 듯 구경하며 요리를 주문한다. 관광객이 밀어 닥칠 때에는 식당주인들이 강으로 달려와 고기를 가져 갈 정도다. 이렇듯 섬진강은, 화개를 찾는 관광객에게 좋은 먹거리와 휴식처를 제공한다.

 

나이를 먹는 것은 그리 대단한 일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확인하는 과정이며 그것을 안 뒤에 실현해 가는 것이 바로 인생이다. - 시오나 나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