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자방

아자방(亞字房)은 스님들이 참선수행하는 선방이다. 벽안당(碧眼堂)이라고도 한다. 신라 효공왕 때 담공선사가 축조 하였는데, 방안 네 귀퉁이의 50cm씩 높은 곳은 좌선처이고, 가운데 십자 모양의 낮은 곳은 경행처이다. 축조 당시에는 한 번 불을 지피면 100일 동안 고루 따뜻하였으므로, 신비한 온돌방이라 하여 세계 건축사에 기록되어 있으며, 현재 경남유형문화재 제144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아자방에서 참선공부 할 때는 장좌불와(長坐不臥, 늘 앉아만 있고 눕지 않는 것), 일종식(一種食, 하루 巳時에 한 끼만 먹는 것), 묵언(言, 말하지 않는 것)의 세 가지 규칙이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규칙을 지키면서 애써서 공부하였기 때문에 이 아자방에서 무수한 도승들이 배출되었다. 그리고 아자방에 문수보살이 화현하여 스님들이 발심정진케 한 이야기가 여러 가지 전해 오는데, 그 중 하나를 소개한다.

조선 중엽 어느 해 음력 10월 14일 동안거 결제를 하려고 하는데 어린 사미승이 걸망을 지고 조실스님을 찾아와 아자방에 방부를 들여 달라고 부탁을 하였다. 조실스님이 보아하니 나이가 어려 도저히 아자방에 방부를 받아줄 수가 없었다. 그 이유는 아자방에서 정진하는 데는 장좌불와, 일종식, 묵언의 세 가지 엄한 규칙이 있는데, 어린 사미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힘겨운 일이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조실스님은 그 사미승에게 더 커서 오면 방부를 받아주겠다고 했다. 그러자 그 사미승이 “부처님 말씀에 생사가 호흡하는 사이에 있다고 하셨는데, 어찌 클 때까지 기다릴 수 있겠습니까?” 했다. 조실스님은 매우 기특하게 여겨 방부를 받아 주셨다. 아자방에서 참선하는 대중들이 한방중이 되어 마구 졸면 그 사미승은 뒤로 벌렁 자빠져 꿍 소리를 내고, 그리고 땅을 치고 울면서 넋두리 하기를 “생사의 괴로움이 아니라면 왜 자고 싶은 잠도 못자고, 먹고 싶은 밥도 제대로 못먹고, 하고 싶은 말도 못하고 이렇게 고생을 해야 하는가”라고 했다. 그러면 졸던 스님들이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정신을 차리고 열심히 정진하였다. 한 철 내내 이렇게 되풀이 하며 해제를 맞이하였다. 해제날 조실스님의 해제 법문이 끝나자 그 사미가 대중 앞에 나와 세 번 절을 하고 “조실스님께서 방부를 들여 주셔서 한 철 공부를 잘 하였습니다.”라고 했다. 그 말이 끝나자말자 그 사미는 온데간데 없었다. 그때야 비로소 대중 스님네들은 그 사미는 문수보살이 화현하여 나타나신줄 알고서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더욱 발심정진 하였고 한다. 칠불사에는 이 외에도 문수보살의 화현에 관한 말씀들이 많이 전하고 있다.

“다그치는 참선 공부 서릿발 같이 엄하네”

- 鞭逼工夫似雪相

“눕지 않고 한끼먹고 면벽하고 앉아”

- 不臥一食面壁坐

“사람들로 하여금 천번만번 생각게하네”

- 令人千萬費商量

“정교한 공법 기이한 공적 엿볼 수 없으니”

- 巧制奇功窺不得

“금관가야에서 오시어 아자방을 축조 하셨네”

- 來自金官築亞房

“담공선사 빼어난 솜씨 멀리 당나라까지 알려졌고”

- 曇空手藝遠聞唐

“임제의 선풍이
한 바탕
나타나리”

- 臨濟狂風現一場

“훗날 나와
더불어
만나게 되면”

- 他年與我來相見

“고목에 꽃이
피니영겁 밖의
향기로다”

- 枯木花開劫外香

“솔 바람 가을 달은
바위에 비춰
어리고”

- 松風秋月斑圓石

“그 중간에 아예
사량분별 하려
하지말라”

- 中間切莫擬思量

“천길벼랑 끝에 매달린 손 놓고 몸을 날려 뒤쳐야 하나니”

- 懸崖撒手飛身轉